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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독립운동가 하늘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by 아기 거북이 2020. 11. 17.

하늘을 나는 독립운동가 권기옥

 

21세기 비행 조종사의 대부분이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정도로

여성비행사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 조종사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 어려움과 난관이 예상가시나요?

 

바로 그 일을 해낸 분이 오늘 소개해 드릴 권기옥 선생님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종사이기도하며

독립운동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신 분입니다.

 

3·1 운동부터 시작된 활발한 독립운동

우리 모두가 아는 3·1 운동에도 참여한 권기옥 선생님은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애국심으로 총명한 눈빛을 보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일찌감치 그녀를 알아보고 숭의여학교 비밀결사대의 송죽회에

가입을 권유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세운동을 돕기 위해 한선부, 김순복, 차진희, 최순덕 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일본인 기숙사 사감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만들며

비밀스런 작전을 펼쳤습니다.

 

말만 들어도 공포스러운 상황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도 공포스러운 당시

매일 마주치는, 24시간을 돌아다니는 기숙사 사감이라니...

 

3·1 운동은 권기옥 선생님과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작전대로 펼쳐졌지만, 이때 송죽회 가입을 권유한

담임선생님이 체포되고 며칠 후 권기옥 선생님또한 유치장에 감금됩니다.

 

 

물고문과 혹독한 고문이 이어지다

 

그후 유치장에서 풀려났지만 권기옥 선생님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권기옥 선생님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을

하였는데, 이때 권기옥 선생님을 끊임없이 의심한 형사에게 들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해진 끔찍한 고문들...

가끔 물을 잘못 삼켜도 엄청나게 괴로운데

권기옥 선생님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물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버티지 못하고 수십번 기절하였으나

끝까지 일본이 원하는 정보는 주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지독해서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다.

검찰에서 단단히 다루기 바란다"는 일본 형사의 메모는

그녀의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줍니다.

 

항공학교 입학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이러한 애국심을 임시정부에서는 귀한 인재로 여겨

중국의 운남육군항공학교에 권기옥 선생님을 추천하였습니다.

 

어릴적부터 비행조종사를 꿈꾼 그녀에게

항공학교 입학은 무척이나 좋은 기회였습니다.

 

입학하면서도 "꼭 조종사가 되어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겠다"는

결심을 하며 공부에 임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가 비행을 배운다는 소식에

일본 측에서는 권기옥 선생님을 사살하겠다는 통보를 하여

학교 안에서만 생활해야 할 정도로

일본의 견제는 매우 심했습니다.

 

하늘에서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다

 

수많은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당당히 운남육군항공학교의

첫 졸업생이 된 권기옥 선생님은 처음 각오했던 것처럼

중국 공군에서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도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 공군의 교육을 위해

"공군의 뿌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귀국 후에는 전 재산을 장학 사업에 기부하시고

낡은 목조 건물에서 남은 생을 보내시다

1988년 사망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한 분을 기억하기 위해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은 물론

우리 또한 권기옥 선생님의 감사함과 대단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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